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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패럴림픽의 감동 재현을 위해!
파라 아이스하키 한민수 코치&신인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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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서 코치로의 전환점을 맞은 전(前) 파라 아이스하키 한민수 선수.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성화를 등에 메고 줄 하나에 의지한 채 가파른 성화대를 올랐던 그는 높은 이상을 향해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아낌없는 격려와 노하우로 신인선수 양성에 힘쓰다!

춘천의암빙상장에 들어서니 절단장애와 척수장애 등을 가진 파라 아이스하키 신인선수 네 명이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민수 코치와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김정호 전임지도자는 선수들의 자세를 잡아주고, 썰매와 안전장비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함께 훈련 중인 선수들은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진행하는 신인선수 양성 사업을 통해 파라 아이스하키를 체험하고, 더 나아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한 기본기를 다지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선수들은 빙판에서 넘어지지 않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맨손운동과 스키머신 등의 기구를 활용해 몸의 근력을 기르고 밸런스를 잡아갔다. 실제 빙판에서처럼 퍽(공)을 컨트롤하는 오픈 아이스도 병행했다. 선수들의 몸은 빙판에 오르기 전부터 젖고 마르기를 반복했다. 김정호 전임지도자는 선수 생활을 하던 대학생(2005년) 때 재능기부로 처음 파라 아이스하키를 접하며 격렬한 파라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2013년부터 신인선수들이 프로나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을 돕고 있는데, 평창 동계패럴림픽 파라 아이스하키 참가 선수 중 다섯 명의 선수가 그의 지도를 받으며 함께 꿈을 키웠다. 김정호 전임지도자가 신인선수 양성 프로그램의 운영과 관리, 체계적 운동 전략을 맡고 있다면, 올해 파라 아이스하키 종목의 첫 장애인 지도자가 된 한민수 코치는 같은 장애인 선수이자 팀의 맏형으로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실제 경기에서 쌓은 노하우 등을 전수한다. 그중 하나가 연습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은 뒤 선수들과 함께 보며 잘못된 동작이나 버릇 등을 세심하게 잡아주는 것. 하지만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따로 있다. 운동을 통해 신인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다.

“많은 장애인이 위축되어 숨어들려는 경향이 있어요. 또 주변사람들은 그들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죠. 이런 정서가 장애인과 사회를 더욱 단절시킵니다. 장애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 스스로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주변에서도 걱정 대신 격려를 해줘야 합니다.”

목발을 짚고도 운동을 놓지 않았던 시간

한민수 코치의 어릴 적 시간에는 늘 목발이 옆에 있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 목발을 짚고도 친구들과 공을 차며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 만난 이들은 함께 공을 차고 뛰놀던 친구들과 달랐다. 그는 따가운 눈총과 여러 차별을 겪으며 좌절 대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도 모르게 장애인들을 보며 ‘난 저들과 달라’라고 생각했던 편견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그 뒤로 더 열심히 직업 훈련을 받았고, 역도와 조정, 휠체어 농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서른 살 무렵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골수염 증상이 번지며 결국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6개월. 처음 한국에 파라 아이스하키를 도입한 이성근 감독의 권유로 파라 아이스하키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는 이성근 감독이 만든 클럽팀 ‘서울 연세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고 빙판 위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했다. 그리고 2006년 강원도청에서 장애인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하며 서른여섯 살에 처음으로 월급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국내 유일 실업팀인 강원도청팀은 창단 2년 만인 2008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 챔피언십 B-POOL에 참가해 전승으로 우승했다.

이후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 패럴림픽에 참가했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는 패럴림픽 메달 획득을 목표로 10여 년간 하던 주장직도 내려놓고 운동에만 전념했다. 드디어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시작이 좋았다. 우리나라 대표팀은 개막전 일본을 상대로 4:1로 승리하고 조 2위로 4강에 올랐다. 그리고 이탈리아와 3, 4위 결정전에서 동메달을 확정지었다. 그는 함께 뛴 선수들을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빙판으로 내려와 그에게 “수고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무한한 가능성을 깨우는 시간

한민수 코치는 평창 동계패럴림픽을 끝으로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었다. 다시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잠시도 쉴 수 없었다. 곧바로 국내에서 리더십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두 달에 걸쳐 선진 하키를 배웠다.

“20여 년을 파라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면서 가장 아쉬웠던 게 장애인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거예요. 팀에서 맏형이었기에 더 사명감이 있었죠. 그 길의 선구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인선수들과 그 꿈의 첫발을 딛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빙판 위로 한민수 코치와 김정호 전임지도자, 선수들이 올랐다. 특히 가장 어린 윤지민(12세) 선수를 챙기는 모습은 꼭 아빠 같다. 윤지민 선수는 여러 모로 한민수 코치를 닮았다. 어린 나이에 절단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하다.

“지민이는 이번 신인선수 중 가장 나이가 어려요. 평소엔 제 나이 또래처럼 무척 개구쟁이죠. 하지만 연습 때면 달라요. 모든 교육에 열심히 참가하죠. 빙판 위에서 넘어져도 금세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썰매를 타요.”

신인선수들과 함께, 다시 도전하다

드디어 본격적인 연습 시작. 둥그렇게 모여 스틱으로 빙판을 두드리며 파이팅을 외친다. 저마다의 꿈과 도전을 실은 썰매가리드미컬하게 얼음을 스친다. 불의의 사고로 하퇴절단을하게 된 이운모(33세) 선수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한동안 외출을 꺼렸다가 운동을 통해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몸도 부쩍 건강해졌다고. 세 살 때 다리를 절단한 오석(19세) 선수는 파라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빠른 속도로 얼음 위를 달리고, 퍽을 자유자재로 놀리다가 골대를 향해 힘차게 날릴 때 느끼는 쾌감은 지켜보는 이에게도 충분히 전달됐다. 고등학교 때까지 엘리트 축구를 했던 황태중 선수(26세)는 낙상사고로 척수를 다쳐 하반신 마비 판정까지 받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재활을 거쳐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지금, 한민수 코치처럼 태극마크를 달고 패럴림픽 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고 있다.

선수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과 묵묵한 지도에는 뜨거움이없다. 한없이 인자하던 한민수 코치의 얼굴은 빙판 위에서 냉정한 지도자의 얼굴로 변한다. 한민수 코치는 먼저 시범을 보이거나, 연습 중인 선수들을 뒤따라 다니며 자세를 잡아주었다.

미국 연수 중 유소년과 성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운동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한민수 코치.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경계 없는 화합을 재현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이 신인선수들과 함께 평창 동계패럴림픽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다. 그의 꿈이, 신인선수들의 꿈이, 빙판 위에서처럼 마찰력 제로의 속도로 가 닿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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